티스토리 뷰

반응형
한강과 채식주의자 - 번역의 성공

한국 문학의 국제적 수상 한계와 극복: 한강과 '채식주의자'

한때 한국 소설가들이 국제 문학상, 특히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과 같은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지 못한 이유로 종종 언급되었던 말이 있었다: "한글과 한국어는 번역이 어려워 해외 문학상을 타기 힘들다". 한국어는 독특한 문법 구조와 문맥이 강하게 반영된 언어이기에, 외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한국 문학이 세계적인 문학 무대에서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2016년 한강이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면서 극적으로 뒤집혔다. 이 사건은 한국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동안의 번역 문제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다. 또한, 이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여정: 한국어 독학과 성공적인 데뷔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는 1987년 영국 중부의 작은 도시 동커스터(Doncaster)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번역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번역가로서 주목한 언어가 한국어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에는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거의 없었고, 그녀는 한국 문학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었음에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한국어를 처음 접한 이후, 본격적인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런던대 SOAS에서 한국문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어는 그리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고, 박사 과정 2년차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한국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회고한다.

그녀의 첫 번째 큰 기회는 2014년 영국 런던 도서전(London Book Fair)에서 찾아왔다. 이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었고, 이 계기로 많은 출판사들이 한국 문학 번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스미스는 '채식주의자'의 번역 샘플을 영국 출판사에 보냈었고, 이 도서전을 계기로 작품이 주목받으며 출판 계약이 성사되었다. 이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한강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의 영문판과 맨부커상 수상

'채식주의자'의 영문판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상은 세계 문학계에서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번역 문학 부문에서 뛰어난 작품에 수여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탈출을 그린 독특한 서사로, 평범한 주부가 악몽을 꾸면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의 선택은 점점 비현실적이고 가혹한 자기 희생으로 이어지며, 독자들은 그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뉴욕타임즈(NYT)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평범한 주부가 악몽을 꾼 후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야기로, 그녀의 자기 희생은 점점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변한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번역에 대해서도 "한국어 원문을 날카롭고 생생한 영문으로 바꾸었으며, 한강의 예리한 탐구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 수상은 단순히 한강 개인의 업적을 넘어,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한강과 데보라 스미스의 협력과 상호 신뢰

수상 이후, 한강은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 직후 한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강은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저는 소설에서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데보라 씨의 번역도 그 톤을 가장 중시하는 번역"이라고 말했다. 한강은 특히 이탤릭체로 표현된 독백 부분에서, 스미스가 자신의 감정과 톤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느꼈고, 이를 통해 두 사람은 깊은 신뢰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철학과 스타일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 문학의 번역 과정에서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번역할 때 한국어의 고유한 단어들을 단순히 영어로 풀어쓰는 것에 반대했다. 예를 들어, '소주'를 'Korean vodka'로, '만화'를 'Korean manga'로 번역하는 방식은 그녀가 피하고자 하는 번역 방식이었다. 대신, 그녀는 한국어의 독특한 문화를 존중하며, '형'이나 '언니'와 같은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대신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한국 문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외국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번역 스타일은 문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논란과 호평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 독자들에게는 이 방식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미스는 이를 통해 번역의 본질적 역할인 문화 간의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데보라 스미스의 이후 활동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흰', 배수아'에세이스트의 책상', 황정은'백의 그림자' 등 다양한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했다. 그녀의 번역은 단순히 한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문학 전반에 걸친 국제적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비영리 번역 출판 단체인 '틸디드 액시스 프레스(Tilted Axis Press)'를 설립하여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 출판사는 주류 출판사들이 주목하지 않는 다양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스미스는 한국 문학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아시아 문학 전반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약

  • 한국 문학의 국제 수상 한계: 한때 한국 문학은 번역이 어려워 국제 문학상을 받기 힘들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으나,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며 이 인식이 극복됨.
  •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영국 출신의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우고, SOAS에서 한국문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주목받음.
  • '채식주의자'의 영문판 성공: 영문판은 뉴욕타임즈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맨부커상을 수상함.
  • 한강과 스미스의 협력: 한강은 스미스의 번역에 대한 신뢰를 표하며, 그녀가 소설의 을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평가함.
  • 스미스의 번역 철학: 스미스는 한국 고유의 단어를 풀어쓰지 않고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번역 방식으로 주목받음.
  • 스미스의 이후 활동: 스미스는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출판사 Tilted Axis Press를 설립함.
반응형